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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분리하는 정책 태반...다른 시야가 필요한 때”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83
등록일
2021-03-08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이자스민 한국문화다양성기구 이사장은 2014년 국회의원이었던 당시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법은 미등록이주민(불법체류자)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출생’이 공표되지 못한 아이는 병원도, 학교도 갈 수 없다.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출생을 등록하게 하고, 최소한의 의료·교육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미등록이주민 부모 역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추방이 유예되도록 했다. 한국이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 내용을 법령으로 실천한 것이다.

법은 폐기됐다. ‘특별체류자격 부여’ 조항에 반발하는 이들이 많았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7,8로 매겨 18세까지 별도의 관리를 하겠다는 내용인데, 특별하게 국적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으로 오해됐다. 법제사법위원회 게시판에 달린 1만5000여 개의 댓글은 악플이 태반이다. ‘군대도 안 갈 아이한테 체류자격을 줄 필요가 없다. 불법체류천국을 조장한다’는 맥락이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출생사실을 등록하지 못한 아이들은 범죄에 연루되기 쉽다. 어떤 사회적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자란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2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에도 원혜영 의원이 미등록이주민의 아동 출생을 등록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한국의 인종주의를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다.

구별 짓고 선 긋는 ‘외국인’ 정책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5%가 외국인이다. 미등록이주민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수치로 예상된다. ‘이민국가’라고 표현되는 캐나다는 전체 인구의 6%가 외국인이다. 차이가 크지 않다. 우리나라와 캐나다의 다른 점은 ‘이민’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결혼이민자, 유학생, 이주노동자 등이 개별적으로 있을 뿐 이들을 관리할 통합기구는 없고, 정책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민 이후 정착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도 있다.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5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줘야 하는데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4년 10개월마다 출국과 입국을 번갈아 해야 한다. 이들은 한국 땅에서 살아가지만, 영주권도 투표권도 가질 수 없다.

여성가족부가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했지만 효과는 작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여성·가족·청소년을 주로 다루는 기구에 특별한 다문화가족 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족정책은 ‘이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낙인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다문화인식개선사업의 경우 ‘다문화가족’에게만 교육이 이뤄진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모든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교육이라면 선주민 역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대상을 다문화가족만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다문화인과 한국인은 다르다’는 인식을 확대한다.

다문화가정의 2세에게 치러지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다문화가정 자녀 모국어 교육 지원사업’ 등은 문화융합을 이룬다는 것이 목표다. 해당 사업 역시 다문화가정 자녀를 별도로 분류하고 호명해 사업을 진행한다. 문화융합을 위한 사업이라면 선주민 자녀 또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취지가 무색하다”며 “다문화가정 자녀만의 집합교육인 건데 아이들에게는 ‘너는 다른 존재’라는 낙인을 새긴다”고 언급했다.

이사장의 자녀가 학교에 입학한 무렵 담임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등교한 지 일주일이 안 됐다. 그는 “아이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습능력이 떨어지기에 별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화가 났다. (내 자녀는) 내성적인 것 뿐이었다. 며칠 만에 그런 판단을 내리는 배경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이 주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은 ‘다르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전제로 설계됐다. 이미 다문화가 다르다는 인식이 거센데, 정책과 제도는 선주민의 ‘구별짓기’를 더 확대한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다른 시야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구별 짓는 방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주민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지 이주민 인권을 신장하는 차원에서의 필요가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포괄적으로 아우른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등의 개별법에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제한적이다. “노동자인 내가 사업주에게 여성비하적 발언을 듣는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개별법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용’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내용만으로는 위 같은 상황에서 구제받을 수 없다”는 게 이자스민 이사장의 설명이다.

사람의 지위·신분은 다층적이고 가변적이다. 그는 “(나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여자고 외국인이다. 어느 한 개의 지위만 가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위는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것”이라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우려도 있다는 식이다. 이자스민 이사장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원래 처음 발의되는 법은 대부분 시기상조다. 시기상조처럼 느껴지는 조항이 있다면 토론하고 논의해 개정안으로 보완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문제 제기엔 그 자유가 차별받지 않을 자유보다 높은 위계에 있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무엇이 차별이고 아닌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없다. 불평등한 상황이 난무하는데도 그렇다. 법이 제정되면 사람들은 말하고 행동하기 전 ‘이게 차별인가’ 라는 의식을 한 번 더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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